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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연대 소식/미디어

참여연대에 노동조합이 생긴 사연 “해치지 않아요”

by 벼리연대 2019. 10. 28.

사회

[만민보] 참여연대에 노동조합이 생긴 사연 “해치지 않아요”

이조은 참여연대 노조 위원장 “문제가 있어야 노조를 만드나요?”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9-01-08 20:50:04

수정 2019-01-09 18: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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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은 참여연대 노조 위원장ⓒ기타

 

“여러분은 언제까지 시민운동을 할 수 있을 거 같으세요? 전 정말 일도 잘 맞고 단체도 너무 잘 맞는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니 막막하네요. 40대, 50대에 내 생활이 가능할지 가끔씩 생각하면 깜깜해요.”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 619번째 사연

약자의 권리침해가 발생하는 곳이라면, 이 사회 어디든 물불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이들이 있다. 바로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사회 변화가 먼저’라는 사명감 아래 사회운동에 헌신해 왔다.

그렇기에 때론, 자신을 돌보기를 포기한다. 모든 노동자의 저녁 있는 삶을 위해 야근을 하며 논평을 쓰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과 ‘생활임금 도입’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최저임금 혹은 그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부여된 소임을 다하기 위해 전국 곳곳을 종횡무진 활동한다. 이런 모순적인 삶 때문에, 시민사회 활동가 사이에서 자주 사용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평화단체에 평화 없고, 인권단체에 인권 없고, 복지단체에 복지 없고, 노동단체엔 노동만 있다.”

활동가도 사람이다. 포기했던 권리는 잊힌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누적된 높은 강도의 노동과 스트레스는 곧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나타나게 돼 있다. 결국 자신의 몸과 마음을 모두 소진한 채 정든 시민사회를 떠나간 활동가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들의 헌신이 지금까지의 사회운동을 떠받쳤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활동가의 희생으로 떠 받쳐진 사회운동은 과연 지속가능한 것일까? 활동가의 희생만이 이 사회를 바꿔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고민 속에서 탄생한 노동조합이 있다. 바로, 참여연대 노동조합이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참여연대를 찾았다. 참여연대 노동조합 초대 위원장인 이조은 간사를 만나기 위해서다. 이 위원장은 참여연대 경제노동팀에서 일하고 있는 상임활동가다.

지난 4일 참여연대에서 만난 이조은 참여연대 간사ⓒ민중의소리

참여연대 노동조합 로고ⓒ민중의소리

“해치지 않아요”

오후 2시30분, 약속시간에 딱 맞춰 그가 일하는 참여연대를 찾았다. 사무실엔 사람 키 높이만큼 쌓여 있는 서류뭉치 등 바쁘게 일하는 활동가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활동가들은 수시로 드나들며 일을 보고 있었다. 혹시나 그들의 일에 방해될까, 문 밖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조은 간사는 아래층에서 다른 일을 보고 있었다. 전화를 받고 곧장 계단을 뛰어올라온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기자에게 인사했다.

그동안 노동현장에서 만나봤던 노조 위원장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뿔테안경을 낀 순박한 청년이었다. 후드 티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가 입은 옷은 노조 옷이었다. 보는 이의 심장을 저격하는 귀여운 색색의 떡 모양의 캐릭터들의 조합 ‘참여연대 노동조합 로고’조차 그와 하나가 돼 있었다.

그런 그의 분위기처럼 참여연대 노조 또한 “해치지 않아요”가 콘셉트다.

참여연대 노조는 마음이 맞는 활동가들 10여명이 반년동안 스터디를 통해 기반을 닦고, 전체 간사들에게 메일을 돌려 실무추진단을 재편성한 뒤, 3개월간의 실무준비를 거쳐, 2017년 10월27일 창립됐다. 참여연대 간사들의 의견을 최대한 모아 매우 신중하게 세워진 노조임에도 불구하고, 노조설립 당시 참여연대 내외부에선 (어쩔 수 없는) 불편한 기류가 감돌았다. 냉정하게 사측과 노동자로 나눠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사측이 된 선배 활동가들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기색이었다고.

“사실 처음이잖아요. 노조도 처음이고. 또 사측이라고 하면, ‘악덕사업주’를 떠올리기 쉬워요. 좋은 사회를 위해 헌신해 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용자가 된 것이니까요. 이렇다보니, 사용자 입장에 서는 게 힘들어 하는 듯 했어요. 그런데 사실 각자의 역할을 맡는 거거든요. 사용자라고 다 나쁜 게 아니고, 노조라고 매번 싸우는 게 아니에요. 대립하고 싸우는 상대가 아니라, 각자가 역할을 맡아서 참여연대를 함께 동등하게 더 민주적으로 만들어가는 일이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참여연대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노조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이조은 위원장은 “참여연대 내에서 어떤 특정한 사건이 있거나, 문제가 있어서 노조가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개인적으로 참여연대는 되게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런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참여연대가 건강하기 때문에 노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로 점철된다.

그러면 건강한 조직에서 왜 굳이 노조를 만들었을까? 이 질문에 이조은 위원장은 특유의 옅은 미소와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조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건가요? 저희 창립선언문에도 있는 얘기지만, 저희 목표 중 하나는, 더 건강하고 더 민주적인 참여연대를 만드는데 기여하자는 거에요. 대화를 하면서, 때론 단결된 목소리로 그러한 참여연대를 만드는데 노조가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기 때문에 노조가 만들어질 수 있었고,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통창구가 열렸다는 그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의 설명을 듣자니 어쩌면 감시, 대안, 참여, 연대를 활동원칙으로 두고 있는 참여연대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할 과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2017년 10월27일 열린 참여연대 노동조합 창립총회 사진ⓒ참여연대 노동조합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

물론 ‘전혀 문제없이 완벽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지금도 노조의 순기능을 통해 해결되고 있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단 참여연대 노조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전체 시민사회가 겪고 있는 ‘지속하기 어려운 활동’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는 참여연대 노조 창립선언문에도 담긴 내용이며, 이조은 위원장을 비롯한 수많은 활동가들이 겪어온 고충이기도 했다. 이 위원장 또한 노조의 필요성을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이조은 위원장은 대학생 시절, 병역거부를 고민하다가 반전평화운동단체인 ‘전쟁없는세상’에서 시민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내가 신뢰하는 도덕체계에서 선택한 (평화주의, 페미니즘) 가치들은 병역을 거부했을 때에 비로소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며 2010년 6월 입영일 날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그해 7~8월에 경찰조사와 검찰조사를 받고, 9월30일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2010년 6월15일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이조은 활동가.ⓒ병역거부 아카이브

그가 출소 뒤 찾아간 곳은 평화박물관(이하 평박)이었다. 종로구 견지동 좁은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평화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명금, 김옥주 할머니의 성금으로 세워진 곳이다. ‘활동가들의 집단사직 사태’와 ‘시민단체 사유화 논란’이 있기 전까지 한국에서 평화·반전 운동의 핵심적인 몫을 해왔다.

사태는 그가 평박 활동가로 있던 2013년 중에 발생했다. 평박 사무처 활동가 7명 중 6명이 집단 사직한 것이다.

이조은 씨는 이 일의 당사자였다. 평박 인사권을 가진 한홍구 상임이사가 구성원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전시담당 활동가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당사자에게 이 사실을 들은 이조은 활동가는 회의 자리에서 문제제기했다. 활동가들과 상임이사 간 갈등은 걷잡을 수 없게 커졌다. 결국 이조은 등 6명의 활동가가 성명서를 내고 집단사퇴를 하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당시 활동가 6명은 ‘사퇴의 변’에 이렇게 적었다.

저희의 목소리가 이 땅에 평화의 씨앗을 심는 데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겪어 온 일을 계기로 ‘조직 내 민주주의’와 ‘시민단체의 사유화’에 대해 시민사회에서 공론화하는 장이 열리기를 바라며, 평화박물관을 포함해 시민사회단체 어디에서도 저희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평화박물관 사무처 활동가 일동 ‘사퇴의 변’ 중에서

하지만 활동가들의 기대와는 달리 평박 사건은 반복됐다. 새로운 인원들로 채워진 평박에서 활동가들의 집단사직 사태가 3년 만에 다시 일어난 것이다. 2016년 5월 활동가들은 평박 누리집에 한홍구 이사가 시민단체 사유화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한 이사 측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이번엔 이전과 달리, 여러 매체에서 해당 사건을 다뤘다.

평박 사퇴 후 참여연대에 들어와 5년차에 접어든 이 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위원장은 “진보단체 중에서도 비민주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꼭 평박만의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로 진보를 표방한 한 출판사에선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노조 간부에 대한 지속적인 괴롭힘을 일삼았고, 지난해 ○○인권정책센터 △△에선 사무국 활동가들이 비민주적 운영 실태를 비판하며 전원 사퇴하는 일이 생기는 등 여러 공익재단과 시민단체에서 비민주적 운영과 노동탄압으로 논란이 돼 왔다.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이런 갈등이 발생해 왔어요. 생계가 불가능한 임금 문제도 있고, 자기 몸 챙기기도 어려운 노동 강도, 활동가들의 노동권 침해 등의 문제가 반복돼 왔습니다. 그리고 주로 문제제기 했던 활동가들이 떠나가게 되는 사례들이 발생해 왔어요. 조직 내 견제기구가 없다보니, 권력이 비대칭적이어서 생기는 문제들이었죠.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문제의식들이 모아졌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떠나지 않는 활동이 가능할까’를 고민하게 됐고, 노조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참여연대 노조는 지난해 첫 임금협상을 잘 마무리 지었다. 다만, 회원과 후원금으로 제한된 재정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에 대해서 꽤 긴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하후상박(下厚上薄)을 적용하자는 데 마음이 모였고, 6년차 이상 선배들이 임금인상분을 양보한 덕분에 후배 활동가들의 임금을 ‘최저임금 인상’에 맞출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올해는 단체협상을 준비 중”이라며, “단체협상 등 노조 경험이 쌓이다보면 자연스럽게 시민사회 산별노조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직까진 노조가 있는 시민단체가 드문 편이지만, 곳곳에서 노조가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재단과 서울노동권익센터에도 노조가 설립됐다고 그는 전했다. 또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활동가들이 상담을 받기 위해 참여연대 노조를 찾는다고 했다.

참여연대 노동조합 로고 자료사진ⓒ참여연대 노동조합

“활동가는 노동자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타인의 권리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를 노동자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이 질문은 활동가들에겐 꽤나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활동가 본인의 활동을 노동으로 규정짓는 순간, 스스로 부여했던 활동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조은 위원장은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활동가도 노동자’라고 말하는 순간, 그 헌신의 가치가 훼손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활동가와 노동자는 대립되는 개념도,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가 없어지는 개념도 아닌데 말이죠. 우린 활동가이면서 동시에 이 활동을 통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노동자입니다.”

이어 그는 역으로 질문했다.

“한국사회에서 더 많은 노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 목소리를 내는 조직 안에는 노조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왜 노조가 없냐고 물으면, ‘우린 문제없다’고 하죠. 다른 곳은 다를까요? 노조라는 건 어느 공간에 문제가 있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시민사회든, 일반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어디든 노동자가 있는 곳이라면 노조가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분야에서 고민하는 활동가라면, 오히려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노조를 만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더 활동가스럽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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